[사설] 일본을 제쳤다고 착각하지 마라
[사설] 일본 기업들이 엔고를 앞세워 세계 인수·합병(M&A) 시장에서 독주하는 양상이다. 올해 상반기 중 일본 기업의 해외기업 M&A 건수는 총 262건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M&A에 쏟아부은 자금규모도 전년 동기 대비 9% 늘어난 3조4904억엔(약 40조원)에 달했다고 한다. 글로벌 경기침체와 유럽 재정위기로 미국, 유럽 기업들이 몸을 사리는 틈을 타 일본 기업들이 공격적으로 M&A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잃어버린 20년이라는 장기침체에 대지진까지 겹치면서 ‘더 이상 일본은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경종을 울릴 만한 얘기다.

삼성전자가 소니를 따돌리고, 현대자동차가 도요타를 따라붙고 있는 것은 물론 고무적인 일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업이나 전체 산업을 보면 전혀 아니다. 하물며 한·일 간 성패가 마치 끝난 것처럼 여기는 건 그야말로 착각이다. 일본에는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우리보다 훨씬 많다. 줄잡아 100개가 넘는다. 게다가 일본의 간판 전자, 자동차 기업들이 퇴조하고 있다지만 업계 재편과 통합 등이 일어나고 있는 점도 변수다. 여기에 공격적인 해외 M&A까지 전개되는 상황이다. 위기 속에서도 산업재편과 글로벌화를 통해 다시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일본기업의 전략을 읽을 수 있다. 일본이 다시 부활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지난해 대일 무역적자 감소도 마찬가지다.2010년 361억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던 대일 역조는 2011년 286억달러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대지진 같은 특수 상황을 감안한다면 대일역조 개선이 추세적이라고 단정하기는 이르다. 일본과의 무역불균형 근원인 부품·소재 무역적자는 2011년 228억 달러로 대일 적자의 약 80%다. 소재는 특히 취약해 대일 적자의 41.5%다. IT분야 핵심소재를 대부분 일본에 의존할 만큼 일본의 벽은 여전히 높다. 최근 일본의 부품·소재기업들이 한국 투자를 확대하고 있어 무역수지 개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지만 일본의 기술력을 따라잡지 않고서는 근본적으로 해결이 어려운 문제다. 일본 언론들이 삼성전자, 현대자동차를 앞다퉈 보도하고 있다지만 우쭐할 일이 아니다. 일본은 아직 살아 있다.